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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한 국내 사업가들은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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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자수성가한 사업가는?

직장인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사업가"를 꿈꾼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는데 안좋은 일을 겪거나 상사의 닥달을 겪을때면 "이럴려고 공부해서 직장을 다니나... 내가 갈때가 없어서 여기 다니나?..." 라고 푸념을 늘어놓을 때가 있다. 이런 이유로 내 사업을 한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직장 생활에 회의를 느끼는 직장인들은 사업을 꿈꾸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직장이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 이라는 말이 있듯이 직접 사업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 부담이 크다. 직장 생활을 은퇴하거나 정리하고 나서 야심차게 시작한 자영업(식당, 유통업, 프랜차이즈, 편의점, 카페 등)은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타격을 입는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직장을 다닐때는 내가 잘못하면 최악으로 회사에서 퇴사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지만 사업이 잘못되면 모든 책임을 사업주인 내가 져야 되는 상황이 되버린다. 그만큼 한 개인이 "사업"을 유지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사업"을 잘 키워서 큰 성공을 이룬 사업가들이 꽤 있다. 그 비율은 수많은 사업가들 중에서도 적은 편이지만 사업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본보기로 불릴만 하다. 

여기서 소개할 사업가들은 부모가 재벌이거나 고위공직자, 정치인 등 가정이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은 제외한다. 평범하거나 가난했지만 본인의 노력으로 큰 기업을 만들어낸 "자수성가" 한 사업가들은 누구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1990년대 이후 창업자 들을 주로 소개한다.)


안랩 창시자 "안철수"

안철수
안철수 안랩 창시자의 모습

현재인 "정치인" 으로 더 알려진 그는 원래 서울대에서 의학을 전공하던 의학도였다. 우연히 접한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심을 가지면서 안철수 본인이 직접 프로그래밍을 하여 바이러스 치료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하였다. 

백신 치료 프로그램인 "V3" 가 널리 퍼지고 유명세를 타면서 그도 확신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프로그래머로써 기업을 세운다. 그 회사가 "안철수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 현 "안랩" 이다. 

초창기에는 회사 운영이 굉장히 어려웠지만 V3 가 대박을 치면서 점점 성장을 하기 시작하여 2000년대 초반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안랩은 현재 국내 보안 솔루션의 선두 주자로 알려져 있다. 

안랩 초창기 회사가 어려웠을때 해외의 보안 기업에서 안랩을 인수하려고 하였으나 당시 대표였던 안철수가 거절하였고 그 뚝심 그대로 밀고 나가서 결국 안랩이라는 회사가 국내 대표 보안 솔루션 회사로 자리매김 하였다. 

코스닥에 상장된 안랩은 현재 시총 1조 1천억, 연 매출 2천억원의 중견기업이다. 안철수는 안랩의 최대 주주이고 안랩의 성공 덕분인지 그의 현 재산은 대략 2천억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안철수씨는 현재 대선 후보로 까지 출마한 유명한 정치인이 되었고 그의 정치인으로서 평가는 다소 엇갈리는 편이다. 하지만 1990년대 초부터 국내 네트워크 보안 기업을 창업하여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보안 기업으로 성장시킨 그의 안목이나 능력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은 원래 대우그룹에서 셀러리맨의 신화로 이름을 날리던 잘나가던 대우맨이었다. 

서정진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

하지만 그는 1999년 대우그룹의 부도로 인해 회사에서 퇴직을 당하게 된다. 한창 IMF 외횐위기 시절에 퇴직을 당한 그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옛 대우그룹 동료 10명과 함께 2002년 바이오 기업 "셀트리온"을 창업하게 된다. 

셀트리온을 창업하기 전에 "넥솔" 이라는 회사를 세우면서 어떤 아이템을 창업할지 고민을 지속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바이오 산업이 미래에 유망할거라는 판단이 들어서 무작정 바이오 사업을 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서정진 명예회장은 대우에서도 샐러리맨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능력이 탁월했던 것일까? 바이오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최신 동향을 파악하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덕분에 2004년쯤에는 공장도 세우게 된다. 

유망한 벤처기업으로 인정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는 투자자와 주위 시선이 존재하는 우여 곡절이 많았던 셀트리온은 본격적으로 성과를 내고 매출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창업한지 20여년 만에 바이오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염을 토한다. 

2022년 현재 셀트리온은 코스피에 상장되어 있으며 시가총액 20조 연매출 2조에 달하는 대기업이다. 그는 지난 2020년에 셀트리온 회장직에 물러났다. 그럼에도 그의 재산은 보유하고 있는 주식 포함해서 대략 13조원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현재 서정진 명예회장의 재산은 국내 자산 순위에 최 상위(국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성공을 거든 자수성가 사업가라고 볼수 있겠다. 

김정주 NXC 회장

게임 벤처 1세대 신화의 주인공 중에 한명인 고 김정주 NXC 회장도 자수성가한 사업가이다. 

김정주
고 김정주 NXC 회장

1994년 게임 바람의 나라를 개발하여 1996년에 넥슨을 창업하였다. 바람의 나라는 1세대 MMORPG 게임으로 리니지와 함께 상당한 인기를 얻으면서 넥슨이 성장하는데 디딤돌이 되었다. 

카운트 스트라이크, 서든 어택, 메이플 스토리, 카트 라이더, 던전 앤 파이터, 테일즈 런너 등의 히트 게임들을 출시하면서 넥슨도 엄청난 성장을 하였다. 

넥슨은 국내 주식 시장에는 상장되어 있지 않고 일본에 상장을 한 특이한 케이스이다. 넥슨의 2021년 매출은 2조 8천억원 수준으로 대기업에 분류되는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넥슨의 성장에 걸맞춰 김정주 회장의 재산도 급격히 불어나 12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1세대 게임벤처로써 엄청난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러나 2022년 2월 그는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갑작스럽게 하와이에서 사망을 하고 만다. 평소에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했지만 그의 사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고 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넥슨과 더불어 국내 게임 벤처 1세대 기업중에 성공한 대표적인 기업인 "엔씨소프트"를 창업한 창업주는 "김택진 대표" 이다.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 김택진 대표

그는 서울대 출신으로 1990년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이후에 한글과컴퓨터 설립자인 "이찬진"과 함께 "아래아한글"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래아한글의 성공으로 당시 이찬진 대표가 김택진과 함께 경영하기를 요청하였으나 그는 거절하고 같은 대학원으로 진학한다. 

진학중에 "한메소프트"를 창업하여 그 유명한 "한메타자교사"를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학원 생활과 병행하면서 이룬 성과였고 1991년 대학원 졸업 이후 현재전자에 입사하여 직장생활을 하였다. 

1996년까지 현대전자 개발팀장으로 근무하였는데 이때 현대정보기술과 분쟁으로 염증을 느낀 나머지 스스로 창업을 결심하고 1997년 "엔씨소프트"를 창업했다. 

창업 직후 만든 게임인 "리니지"는 잘 알다시피 엄청난 대성공을 한다. 리니지로 인해 엔씨소프트는 유명한 벤쳐기업이 되었고 김택진 대표는 억만장자가 되었다. 

현재도 "리니지"는 서비스가 되고 있는 장수게임이고 리니지 모바일등으로 모바일 게임시장에서도 승승장구 하고 있다. 그 밖에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시리즈, 프로야구 H3, 길드워 등으로 엔씨소프트는 국내 게임 기업중에 대기업 반열에 오른다. 

현재 엔씨소프트는 코스피 시장에 상장되어 있으며 시가총액 10조, 연매출 2조 8천억원 정도의 대기업이다. 국내 게임 대기업인 넥슨(NXC), 넷마블 등과 함께 게임 3대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김택진 대표 자신도 국내 재산 순위 16위, 주식 포함 2조 8천억 규모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부자이다. 그가 창업을 할때 그의 부모는 택시 80여대를 보유하고 있는 택시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서 나름 잘사는 집안이었는데, 김택진 대표가 회사를 창업할때 일체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어서 그는 자수성가형 사업가라고 볼 수 있다. 

엔씨소프트가 엄청난 성공을 했지만 게임 "리니지"로 인한 사회적 문제로 인하여 평가가 엇갈리는 면이 있다. 2011년에는 프로야구 구단인 "NC 다이노스"를 창단하여 스포츠 사업에도 진출하였으나 NC 구단이 여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바람에 엔씨소프트 및 김택진 대표의 이미지가 많이 나뻐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럼에도 그의 성공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리니지의 성공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국내 게임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방준혁 넷마블 의장

초기 게임 벤처 1세대의 마지막 주자 "넷마블" 을 창립한 "방준혁 의장"도 자수성가형 사업가이다. 


방준혁
방준혁 넷마블 의장

그는 어렸을적부터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의 가리봉동에서 태어난 그는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최종학력이 "초등학교졸"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랬던 그가 인터넷 영화 사업과 위성사업을 했지만 실패의 쓴맛을 봤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2000년, 방준혁은 자본금 1억으로 게임회사 "넷마블"을 창업한다. 넷마블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 카드 게임, 테트리스 등으로 크게 성공하여 넷마블을 CJ E&M 에 매각하여 800억원대의 주식부자가 된다. 

이후 CJ 계열사의 CJ인터넷 사장으로 지내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은퇴를 하였는데 이후에 CJ E&M의 사업이 부진해지자 구원투수로 등판하면서 다시 경영에 복귀한다. 

복귀 후 그의 탁월한 능력으로 인해 CJ E&M의 게임 사업이 다시 매출이 좋아지면서 CJ 게임즈로 합병하기에 이른다. 이때 중국 인터넷 기업인 텐센트에 투자를 받으면서 CJ 게임즈에서 최대 주주가 된다. 

이후에 CJ 게임즈를 넷마블 게임즈 -> 넷마블로 바꾸면서 실적이 엄청나게 늘어나게 된다. 그러다 2017년 넷마블이 코스피 시장에 상장하면서 방준혁 의장의 자산은 엄청나게 증가하게 된다. 

2022년 현재 넷마블의 시가총액은 약 7조원 매출액은 3조원 정도 되면서 국내 게임 대기업인 넥슨, 엔씨소프트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방준혁 의장 개인으로도 국내 자산순위 17위(주식 포함 약 2조 7천억원)에 오를 정도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다. 

어렸을때 가난하여 초등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했던 그는 "신화" 라고 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기업가이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붐이 한창 일던 시절 40~50 세대들은 "세이클럽" 이라는 인터넷 채팅 사이트를 한번쯤 들어가서 채팅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세이클럽을 개발한 이가 바로 현재 크로프톤의 의장인 장병규이다.

장병규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

장병규 의장은 1973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 과학고, 카이스트를 졸업한 수재이다. 1997년 카이스트 박사 과정 중에 네오위즈를 공동창업하고 "세이클럽"을 통해 네오위즈를 코스닥 시장에 상장시켜서 큰 돈을 벌게 된다. 

그는 이후에 탄탄대로를 걷는다. "첫눈" 이라는 회사를 창업하였는데 2006년 NHN에 350억에 매각이 되는 행운을 누린다. 그는 네오위즈와 첫눈을 통해 1000억원대의 자산을 거머쥐게 된다. 

그 이후에 행보도 주목할만하다. 게임개발사인 "블루홀 스튜디오(현 크래프톤)"을 창업하여 테라,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 그라운드 등의 게임의 엄청난 흥행으로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이에 크로프톤은 2021년 기업공개를 통해 상장을 하였고 현재 시가총액 12조원, 연매출 2조2천억, 영업이익만 9천억원에 달하는 엄청난 회사로 성장시켰다. 

크로프톤 주가가 성장하자 그의 자산도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 2021년 현재 국내 재산 순위 47위 약 1조1천억원의 자산을 보유한 부호가 되었다. 그도 별도의 외부 도움을 받지 않고 창업을 하여 성공한 "자수성가형" 사업가이다. 

그는 이런 IT 업계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 정부에서 "4차산업혁명위원장" 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정부의 "주52시간제"를 비판하면서 평가가 엇갈리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것이 그는 주당 100시간을 일하는 지독한 워커홀릭이었기 때문이다.


권혁빈 스마일게이트홀딩스 CVO

국내 5대 게임사(NC소프트, 넷마블, 넥슨, 크래프톤)에 속하는 게임회사인 "스마일게이트"를 창업한 창업주이다. 2002년 스마일게이트를 창업하였으며 현재 매출 1조원을 넘는 대형 게임사로 발전하였다.

권혁빈
권혁빈 스마일게이트홀딩스 CVO

1974년 출생한 권혁빈 CVO는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공학도였다. 1999년 포씨소프트를 창업하였고 3년후에 스마일게이트를 창업한다. 

스마일게이트 창립 초기에는 피처폰의 게임을 개발하던 회사였다고 한다. 이후에 2005년 "헤드샷 온라인"을 출시하였으나 당시 서비스를 맡은 야후코리아가 서비스를 철수하는 바람에 정식 출시도 하지 못한 상황이 되버렸다고 한다. 

이후에 스마일게이트의 성장에 발판을 삼은 게임 "크로스파이어"를 출시한다. 크로스파이어는 출시 초기에는 국내에서 별다른 진척이 없었지만 베트남, 중국등의 해외에서 엄청난 흥행을 하는 바람에 대박을 터트린다. 크로스파이어로 인해 스마일게이트는 국내 5대 게임업체로 성장하게 되었다. 

2011년 대작 게임인 "로스크야크"를 개발 시작하였고 2012년에 스마일게이트 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하고 지배구조를 재배치한다. 로스트야크의 경우에는 7년동안 개발을 하고 무려 1천억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대작 게임이다. 

2018년 정식 출시 이후에 반응은 미지근했으나 점차 사용자가 늘면서 2020년에는 무려 이용자가 10억명(전세계)을 보유하는 스마일게이트의 대표 게임이 되었다. 

로스트야크가 대박을 터트리며 현재 스마일게이트홀딩스의 매출은 연 1조4천억원대로 1조 클럽에 가입한다. 영업이익만 6천억원으로 엄청난 기업가치를 지녔다고 볼 수있다. 

스마일게이트가 국내 5대 게임기업으로 올라서면서 덩달아 권혁빈 CVO의 자산도 증가하였다. 특이하게도 스마일게이트 홀딩스를 비롯 모든 계열사가 "비상장" 회사이다. 스마일게이트 홀딩스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권혁빈 CVO는 회사 가치와 자산 약 10조6천억원을 보유한 국내 5위의 자산가다. 

그도 게임회사를 창업하여 대박을 터트린 자수성가형 사업가이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우리나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기업 "네이버"의 창립자인 이해진 또한 자수성가형 기업가이다.

이해진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 투자 책임자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학교와 카이스트 전산학 석사를 졸업하였다. 카이스트 졸업 후 1992년 삼성SDS에 입사하여 직장 생활을 하던 도중에 사내 벤처 프로젝트에 "검색엔진"인 네이버가 채택되어 1999년 네이버를 창업하게 된다. 

검색엔진으로 출발한 네이버지만 경쟁업체인 "다음" 과 함께 국내 포털서비스를 출시하면서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네이버 뉴스, 메일, 카페, 블로그, 쇼핑, 페이 등으로 네이버는 엄청나게 성장하였으며 현재는 국내 포털 시장에서 국내 사용자 1위, 점유율 1위의 독보적인 위치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메신저 서비스인 "라인"이 대성공을 거두고 게임등이 성공하면서 네이버는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현재 네이버는 시가 총액 47조원, 연매출 8조원, 영억이익 1조 5천억규모의 대기업이다. 이미 네이버는 대기업 집단으로 성장한지 오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엄청난 매출 상승과 주가 상승으로 인해 이해진 글로벌 투자 책임자의 자산도 엄청나다. 그는 현재 국내 자산순위 18위에 기록되어 있으며 약 2조 5천억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

BTS(방탄소년단)의 아버지를 불리는 방시혁 의장도 자수성가형 기업가이다.

방시혁
방시혁 하이브 의장

그는 1972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를 졸업하고 2001년 JYP(박진영)과 함께 JYP엔터테인먼트의 공동창업자로 활약하다 2005년 빅히트 엔터테인먼트(현 하이브)를 설립한다. 

창업 당시만 해도 규모가 작고 인지도가 부족하였으나 2010년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을 맡으면서 유명해졌다. 직설적인 화법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면서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날린 것이다. 

그러다 3~4년 전부터 빅히트 소속 아이돌 그룹인 "방탄소년단(BTS)" 가 점점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으면서 덩달아 빅히트의 매출도 엄청나게 증가하기 시작한다. 다 알다시피 BTS는 해외에서도 폭발적인 인기로 인해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빅히트를 BTS가 먹여살린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BTS 로 인해 빅히트의 성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고 결국 2020년 기업공개를 통해 주식시장에 상장을 하게 되면서 방시혁 의장은 엄청난 자산가가 된다. 

현재 빅히트는 사명을 하이브로 바꾸고 매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하이브의 시가총액은 10조 가까이 되며 올해 예상되는 연매출만 2조에 달할걸로 추정하고 있다. 

BTS의 인기와 하이브의 성장에 힘입어 방시혁 의장의 자산은 국내 자산 순위 15위이며 약 3조원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금융 그룹 회장

샐러리맨의 신화. 주식을 잘하는 청년.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수식어이다.

박현주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그는 일찍부터 경영과 자본에 눈을 떴다고 한다. 1958년 광주 출신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스물일곱의 나이에 투자 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하다 1986년 동양증권에 입사하여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32세의 나이에 지점장으로 승진하면서 전국 최연소 지점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승승장구를 하다 1997년 미래에셋벤쳐캐피탈,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설립하였다. 미래에셋 설립 후에 그가 운용하던 펀드들이 엄청난 수익을 내는 "대박"을 치면서 미래에셋은 유명 투자운용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러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로 미래에셋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당시 운용하던 펀드들이 반토막이 나고 박현주 회장이 주장하던 중국 펀드들이 큰 손실을 입게 되자 미래에셋의 입지가 엄청나게 흔들렸던 것이다. 

하지만 위기를 잘 극복하면서 미래에셋은 지속적으로 성장. 특히 2016년에는 산업은행 소유였던 대우증권을 인수하면서 국내에서 명실상부한 원톱의 투자회사로 성장한다. 

미래에셋의 성공으로 박현주 회장 개인 자산도 엄청나게 증가한다. 그는 한국 자산 순위 34위에 랭크되어 있으며 약 1조 5천억원 정도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서정진 셀트리온 명예회장.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 카카오의 신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다.

김범수
김범수 카카오 의장

그는 국내 IT 기업의 꽤나 입지전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난 1966년 출생으로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SDS에 입사를 한다. 

삼성 SDS에서 유니털 개발을 담당하고 잘 나가던 도중에 1998년 대형 PC 사업을 하게 된다. 여기서 꽤나 PC방 사업이 잘 되서 승승장구를 한 후에 1998년 연말에 게임회사인 "한게임"을 창업하게 된다. 

한게임은 카드, 포커, 테트리스 등의 아케이드 게임을 전문으로 서비스 하던 회사였다. 한게임의 성공에 힘입어 같은 삼성 SDS 출신 이해진이 창립한 네이버와 합병하고 NHN 공동 대표가 된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2007년에 NHN 대표직을 사임하고 1년간 미국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이 시기가 가장 행복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다 2010년경에 우리가 잘 아는 앱인 "카카오톡" 이 탄생하게 된다. 모바일 시장이 크게 성장할걸 내다본 김범수 의장이 창업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예상대로 무료 메신저 기능이 탑재된 카카오톡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지만 창립 초창기만 해도 수익원이 없었기 때문에 회사 운영비 조차 확보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국내 모바일 대다수의 유저가 카카오톡을 사용하게 되면서 수익원을 찾던 김범수 의장은 카카오톡에 게임을 탑재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게 된다. 그 이후로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프랜즈, 페이, 마켓, 대리 등으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카카오는 대기업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카카오는 이에 그치지 않고 카카오 뱅크로 인터넷 은행에 진출, 다음 인수 등을 통해 네이버를 뛰어넘는 국내 최대 종합 포털 IT 서비스 회사로 성장한다. 현재는 4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해 있다. 

2021년말 카카오 매출은 6조원에 달하며 현재 시가총액 40조원에 이른다. 또한 카카오 뱅크, 카카오 페이 등이 연이어 상장하면서 김범수 의장 본인의 자산도 엄청나게 증가한다. 

김범수 의장은 국내 자산 순위 4위에 랭크되어 있고 약 12조 정도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담양의 평범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카카오를 설립후에 불과 10년만에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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